
[다이어리포인트=엄주용 기자] 정부가 장기 연체자의 채무를 대대적으로 감면해주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자, 성실 상환자들 사이에서 “우리만 바보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도박 등 사행성 채무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금융 질서와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19일 국무회의를 통해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공식 발표했다. 이 정책은 무담보 개인 채무 중 7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산하 특별기구가 매입한 뒤 최대 90%까지 감면하거나, 전액 소각 후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113만 명, 총 16조 4천억 원에 달하는 장기 연체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중위소득 60% 이하의 소상공인은 채무의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고, 나머지 채무도 20년에 걸쳐 분할 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 채무자는 최대 80% 감면 후 10년 분할 상환 방식이 적용된다.
이 같은 발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7년만 버티면 빚 탕감받는 세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김모 씨는 “매달 용돈까지 줄이며 원금을 갚았는데, 연체자에게 혜택을 주면 내가 너무 허탈하다”며 “앞으로는 빚을 일부러 안 갚고 기다리는 게 유리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는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이번 정책은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며 “채무를 회피해도 결국 용서받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금융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조치에는 도박, 불법 투자 등 사행성 부채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더해지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자영업자처럼 어쩔 수 없는 생계형 부채와, 본인의 무책임한 소비에서 비롯된 사행성 부채를 동일 선상에 놓는 건 불공정하다”며 “엄격한 심사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대상자 선별 시 심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할 것이며, 단순히 시간이 지난 연체라는 이유만으로 탕감되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신용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과 병행하여 사후관리 방안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실하게 채무를 갚아온 사람들에 대한 보상이나 인센티브는 현재 별도로 준비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역차별’이라는 비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채무탕감자에 대한 구제와 함께, 성실 상환자에게도 일정한 신용 우대나 세제 혜택이 제공되어야 공정한 제도 설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책 추진을 위한 재정 확보 방안 역시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7천억 원에서 최대 1조 1천억 원까지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가 재정 부담 가중과 함께, 캠코가 매입한 채권의 회수 가능성이 낮아 장기적으로 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정부는 2025년 하반기 중 프로그램의 세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단기적 구제가 아니라 장기적 금융재건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 모두를 고려한 세부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터진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제도 시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한 설득 노력과 함께, 성실 상환자에 대한 실질적 보완 대책이 병행돼야 정책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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