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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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포인트=엄주용 기자] 정부가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기존의 일시금 형태 퇴직금 제도는 폐지 수순에 들어가며, 이에 따라 사업주는 근로자 퇴직 시 ‘한 번에 목돈’을 주는 대신 일정 기간 동안 분할해 지급하는 퇴직연금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퇴직급여제도 개편 방향을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은 개념부터 방식까지 차이가 있다. ‘퇴직금’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사업주가 일정한 금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일반적으로 1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에게 평균 임금의 30일분 이상이 지급되며, 퇴직 즉시 전액을 수령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용자의 지급 능력에 따라 체불되거나 제대로 쌓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랜 기간 논란이 되어 왔다.

반면 ‘퇴직연금’은 사업주가 근로자의 퇴직 이후를 대비해 금융기관에 일정 금액을 적립해두는 제도로, 근로자는 퇴직 후 이 자금을 연금 형식으로 수령하게 된다. 연금은 수령 시기, 방식(일시금 또는 분할 수령), 운용 방식(확정급여형·확정기여형)에 따라 달라지며, 장기적으로는 안정적 노후 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가 이번 개편을 통해 퇴직연금을 전면 의무화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퇴직금 체불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이고, 둘째는 고령화 시대를 맞아 국민의 노후 소득 보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은 근로자의 명의로 금융기관에 별도 적립되기 때문에 사업주가 자금을 유용하거나 지급을 회피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의무화 방안은 단계적으로 추진된다. 우선 300인 이상 대기업을 시작으로 중견기업, 50인 미만 중소기업, 영세업체까지 5단계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퇴직연금 적용 확대에 따른 중소기업 부담을 고려해 세제 지원과 재정 보조 등 다양한 유인책도 마련 중이다.

또한 근속 기간 요건도 완화된다. 현재는 1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에게만 퇴직급여 자격이 주어지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3개월 이상 근속자도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단기·비정규직 근로자까지 제도 혜택을 폭넓게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퇴직연금공단(가칭)’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처럼 공적 기구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집중 운용하고 수익률을 관리하는 형태로, 현재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연금 운용의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현재 퇴직연금 누적 적립금은 약 430조 원에 이른다.

이 제도는 일반 근로자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확대 적용된다. 정부는 이들 취약계층 근로자에 대해서도 퇴직연금 적용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법·제도 정비에 착수한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퇴직연금 의무화에 따른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과 행정 절차 증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퇴직급여를 정기적으로 적립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 유동성이 악화될 수 있고, 특히 인건비 비중이 높은 업종일수록 부담이 크다. 이에 정부는 제도 전환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유예 조치와 전환 기간을 둘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이 일시금 중심의 퇴직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근로자 입장에서도 한 번에 큰돈을 받는 대신 안정적인 연금 방식으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동시에 자금 운용의 전문성, 수익률, 제도 관리의 공정성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관련 법령 개정과 퇴직연금공단 설립안을 구체화하고, 내년부터는 시범 사업장 운영과 제도 도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사라지는 퇴직금, 새롭게 자리 잡는 퇴직연금. 그 전환이 가져올 노사 관계와 노동시장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