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포인트=김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순금 기념주화 발행이 공식 승인되면서 미국 안팎에서 민주주의 원칙 훼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건국 25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이지만, 재임 중인 현직 대통령의 초상을 화폐에 넣는 것은 건국 선조들이 가장 경계했던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미국 순수미술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초상을 담은 24K 순금 기념주화 디자인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승인된 디자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 위에 두 주먹을 짚은 채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뒷면에는 미국의 국조인 흰머리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형상이 새겨졌다. 주화 지름은 최대 7.6센티미터까지 제작이 가능하며, 백악관 측은 가능한 한 크게 만들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임스 맥크러리 2세 위원회 부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큰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회의 과정에서 트럼프 초상 삽입에 반대하는 의견은 단 한 건도 제기되지 않았으며, 위원들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해당 디자인을 승인했는지 여부에만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금화는 미 조폐국이 추진하는 건국 250주년 기념주화 시리즈의 일환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가 아닌 수집용 주화로 분류되며, 판매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유사한 기념 금화가 과거 1천 달러(약 150만원) 이상에 판매된 사례가 있어 상당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금화를 포함해 이미 세 건의 트럼프 초상 주화를 추진 중이다. 앞서 1월 위원회는 트럼프 얼굴이 들어간 유통용 1달러 동전과 액면가 250달러짜리 1온스 순금 수집용 주화 디자인을 각각 승인한 바 있다.
논란의 핵심은 미국 건국 선조들이 가장 경계했던 관행을 현 행정부가 스스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건국 선조들은 대통령의 얼굴이 화폐에 새겨져 군주처럼 비치는 것을 극력 반대했다. 1866년 제정된 테이어 수정법은 "사망한 개인의 초상만이 미국 화폐와 유가증권에 등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해 재무장관이 기념주화 주조와 발행을 승인할 권한을 보유한다는 별도의 법령 두 건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수집용 주화는 유통 화폐나 유가증권과 법적 성격이 다르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제프 머클리 상원의원은 "동전에 자기 얼굴을 새기는 이들은 군주나 독재자이지,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앞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동전 발행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중 잣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조폐국은 건국 250주년 기념 25센트 동전 디자인 과정에서 기존에 검토되던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시민권 운동 관련 도안을 전면 폐기했다. 수년간 화폐 전문가와 역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검토해온 안건이었다. 책을 든 흑인 소녀, 투표권을 요구하며 깃발을 든 여성 등의 디자인 대신 에이브러햄 링컨, 제임스 매디슨 등 역대 대통령의 초상이 최종 채택됐다.
브랜든 비치 미 연방재무관은 성명을 통해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주화 전면에 현직 대통령보다 더 상징적인 인물은 없다"며 행정부의 입장을 옹호했다. 반면 과거 동전 자문위원을 지낸 하이디 웨스트윗은 "역대 대통령의 초상이 재임 중 동전에 등장하지 않도록 한 것은 현명한 전통이었다"며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미국 역사상 생존한 현직 대통령이 화폐에 등장한 사례는 1926년 건국 150주년 당시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유일하다. 당시에도 해당 주화는 거센 여론의 반발 속에 대부분 회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년 만에 같은 논란이 재현되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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