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포인트=김정훈 기자] 대한항공이 창립 이래 57년간 단 한 번도 바꾼 적 없는 '승무원은 굽 있는 구두를 신는다'는 원칙의 폐기를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현재 노사 협의를 통해 기내 근무 시 운동화나 기능성 신발 착용을 허용하는 복장 규정 개편을 검토 중이라고 21일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승무원의 신체적 피로가 누적되면 결국 비상 상황에서 대응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며 "직원이 편안해야 기내 안전과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는 것이 회사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하루 1만5000보 이상, 14시간 서서 일하는 직업
그간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3~5cm 굽의 구두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했다. 얼마나 오래 서서 일하는가를 따져보면 이 규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에 따르면 객실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하루 평균 1만5000보 이상을 걷고, 서서 일하는 시간이 14시간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채 이 같은 중노동을 반복하면서 발 피로, 족저근막염, 하지정맥류 등 근골격계 질환이 직업병으로 자리잡아 왔다.
제주항공→에어로케이→대한항공…'신발 혁명' 확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서 먼저 변화의 물꼬를 텄다. 에어로케이항공은 2020년 출범 당시부터 운동화를 정식 근무화로 채택했으며 제주항공은 올해 2월 모든 객실 승무원에게 운동화를 지급하며 제도를 바꿨다.
이번에 대한항공이 동참하면 파급력이 다르다. 확정될 경우 연말 합병 예정인 아시아나항공에도 동일 규정이 적용될 전망이어서 두 항공사 통합 승무원 약 1만 명이 한꺼번에 운동화 착용이 가능해진다.
해외항공사 변화…JAL의 교훈
해외에서도 '승무원 하이힐'은 이미 사라지는 추세다. 일본항공(JAL)은 지난해 승무원과 지상직 1만4000명에게 운동화 착용을 허용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2024년 1월 하네다공항 충돌 사고였다.
당시 JAL 여객기가 충돌 후 화염에 휩싸이는 상황에서도 탑승자 379명 전원이 90초 만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경험을 통해 JAL은 구두 대신 운동화가 비상 탈출 시 이동 속도와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국 에어트래블도 하이힐 규정을 폐지하며 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올해 2월 안경 허용 이어 연속 변화
이번 운동화 허용 검토는 대한항공이 올해 2월 여성 승무원의 안경 착용을 허용한 데 이은 연속적인 복장 규정 완화 조치다. 그동안 국내 항공사들은 여성 승무원에게 콘택트렌즈 착용을 사실상 강제해 왔으나 대한항공이 이를 처음으로 공식 철폐했다.
두 달 만에 또 다른 외형 규제가 바뀌면서 항공업계 내부에서는 복장과 외모 기준 전반에 대한 재검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승무원 노동조합 측도 "신발뿐 아니라 획일적인 메이크업 기준과 헤어 규정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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