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포인트=김정훈 기자] 저소득층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 만들어진 급식카드가 정작 아이들의 밥상이 아닌 어른들의 술·담배 구입에 쓰이고 있었다. 정부가 전국 실태 조사에 나선 결과 부정 사용 규모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조정실과 보건복지부는 24일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182개 지방자치단체의 결식아동 급식카드 운영 실태를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2025년 1~8월 기간 동안 카페·술집·PC방 등 식사와 관련 없는 업종에서 결제된 금액이 12억 4762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13곳에서 술·담배 구매 내역이 확인됐다. 발급된 카드의 14% 이상이 목적 외 업종에서 한 차례 이상 사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업종별로는 카페 결제가 약 1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학원·미용실 등 생활시설 1억 4000만원, 주류 취급 업소 700만원, PC방·노래방 500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조직적인 허위 결제 사례다. 중학생 자녀에게 발급된 급식카드를 이용해 자신이 운영하는 분식점에서 2022년부터 올해 4월까지 매일 하루 한도인 3만원씩 허위 결제, 총 1295만원을 빼돌린 부모가 적발됐다. 전국적으로 이 같은 방식의 허위 결제 사례만 55건, 1억 7000만원 규모에 이른다.
아동 학대 등으로 부모와 분리된 뒤에도, 심지어 아동이 사망한 이후에도 카드가 계속 사용된 사례까지 드러났다. 자격 변동 시 카드를 즉시 정지하는 체계가 없었던 탓에 구조적 허점이 오래도록 방치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발생하는 부정 사용도 여전하다. 현행 시스템은 식재료와 주류·담배가 같은 영수증에 묶여 결제되더라도 이를 걸러낼 필터링 기능이 없다. 일부 점주가 부모와 공모해 상습적으로 주류·담배를 결제해주는 사례도 적발됐다.
심야 시간대 사용 문제도 심각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이뤄진 결제액이 무려 9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이들이 직접 사용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발생한 금액이 대부분 부적정 사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역설적으로 급식카드 충전금 171억원은 아예 사용되지 않은 채 소멸됐다. 카드가 지원 카드임을 드러낼까봐 꺼리는 '낙인 우려'나 사용 방법을 몰랐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급식카드가 일반 신용카드와 겉모양이 동일하다는 점을 적극 홍보해 미사용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결제 시스템과 관리 체계 전반을 손보기로 했다. 마트·편의점에서 주류·담배 등 특정 품목 결제를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심야 시간대 결제도 제한할 계획이다. 아동 사망·분리 등 자격 변동이 생기면 카드를 즉시 정지하는 체계도 구축한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결식아동 급식카드가 아이들의 끼니를 위한 본래 목적에 맞게 쓰일 수 있도록 제도 전반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결식아동 급식카드를 지원받는 아동은 전국 15만명이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등 저소득 계층 아이들에게 매달 30만원 한도로 충전되는 이 카드는, 방학 중 급식이 끊기는 아이들이 직접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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