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리포인트=김정훈 기자] 역대급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이 마침내 에어컨을 향한 '고집'을 꺾으며, 냉난방공조(HVAC) 관련 기업들이 뜻밖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환경 파괴와 비싼 전기료를 이유로 에어컨 보급을 꺼려온 유럽이지만,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 더위 앞에서 태도가 180도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급률 20%대 '미개척지'…"구조적 수요 증가" 전망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2022년 기준 약 19%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미개척 시장'으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에어컨 보급 대수는 2050년까지 약 2억7500만 대로 늘어나, 2019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Citi)도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씨티 애널리스트들은 "유럽 전역의 기온 상승이 냉방 시스템 수요 증가로 이어지면서, 에어컨 보급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 지역에서 미국 HVAC 기업들에게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씨티는 극심한 폭염이 점점 더 자주 발생함에 따라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 에어컨 사용이 구조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캐리어·다이킨 주가 급등…"매출 20% 이상이 유럽"
실제 시장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주거용 에어컨 매출 비중이 높은 미국 캐리어글로벌은 올해 들어 지난달 25일까지 시가총액이 22.5% 증가했으며, 일본의 대표 HVAC 업체 다이킨공업 주가도 올해 들어 17% 상승했다. 다이킨은 "지난 3월 말 기준 최근 1년간 유럽 에어컨·냉동 장비 매출이 10% 늘었다"고 밝혔다.
씨티는 캐리어와 트레인 테크놀로지(Trane Technologies), 존슨 컨트롤즈(Johnson Controls) 등 미국 상장 HVAC 제조업체들이 이번 추세의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캐리어를 잠재적인 주요 수혜 기업으로 꼽으며, 전체 매출의 20% 이상이 유럽 기후 솔루션 사업부에서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유럽 현지 기업들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난방·환기·공조 시스템 부품을 공급하는 프랑스 건축자재 업체 생고뱅은 전 거래일 3% 이상 오른 데 이어 추가로 2.2% 상승했다. 냉동·에어컨 장비를 유통하는 스웨덴 도매업체 베이어레프도 전날 약 5% 급등한 데 이어 1.3% 추가 상승했으며, 냉방 관련주인 스웨덴 니베인더스트리어 역시 이틀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중국 가전업체도 특수…에어컨 매출 70% 이상 급증
중국 가전업체들도 유럽 폭염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알리바바닷컴에 따르면 유럽 8개 주요 시장 가운데 6곳에서 선풍기와 에어컨 주문이 크게 늘었으며, 메이디·그리전기·TCL·하이얼 등 중국 주요 가전업체들도 기후 변화에 따른 냉방 수요 증가의 직접적인 수혜를 보고 있다. 한 업체는 올해 상반기 서유럽 지역 에어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이얼은 유럽의 오래된 주택에서 에어컨 설치가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시장 전용 모델을 개발해 대응하고 있으며, 이 제품은 설치비가 350만 원에 달하지만 품절 대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전력망·재생에너지까지 수혜 범위 확대
투자업계가 주목하는 분야는 냉방 기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장조사업체 모닝스타는 상업용 히트펌프와 냉방 장치 제조사인 존슨 컨트롤즈와 지멘스가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으며, 풍력 에너지 기업 베스타스와 재생에너지 전력 회사 이베르드롤라도 직접적인 수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냉방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망 과부하는 인프라 현대화 테마로도 이어지고 있다. 모닝스타 리서치 이사는 "노후화된 전력 인프라가 수요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강화가 시급해졌다"며 "전력 인프라 강화에 필요한 변압기와 전력 관리 장비를 공급하는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지멘스가 이 구조적 투자 테마의 핵심 수혜자"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보험사들이 정교한 기후 모델링을 적용하면서, 재보험사 아온과 캐나다 인택트파이낸셜 등 보험업 관련 기업들도 성장 분야로 꼽혔다.
"환경보다 생존"…유럽 내부서도 에어컨 논쟁 가열
다만 유럽 내부에서는 에어컨 보급 확대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에어컨 설치를 최대한 억제하려는 기존 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폭염 상황에서는 에어컨이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조차도 에어컨을 폭염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한 바 있어, 앞으로 유럽의 에어컨 보급 확대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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